HOME > 예배/말씀 > 칼럼


총 게시물 529건, 최근 0 건
   

‘진주’ 단상 (박일영 목사)

글쓴이 : 나성한인연… 날짜 : 2024-04-15 (월) 07:28 조회 : 269

옹달샘

 

진주단상


                        박일영 목사


요사이 막내가 입양해 온 강아지 '진주'와 함께 살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즐거움이 쏠쏠하다.


어느덧 진주에게 초경이 찾아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강아지들의 생리는 생후 6개월쯤에 시작하고, 한 번에 2-3주 동안, 1년에 1-3회를 하는데, 이때는 잘 먹고, 운동은 줄이고, 심리적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줘야 한단다. 막내는 걱정이 많았다.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기저귀를 주문해야 할지, 중성화 수술을 해 줘야 할지... 그도 그럴 것이 그도 첫 경험이니까...


진주는 며칠 새 기운이 빠져 있고, 얼굴도 핼쑥하고, 아마 생리통 때문인지 평상시와 다르게 고개를 자기 발밑에 처박고 축 처진 모습으로 누워 잔다. 안쓰러운 마음, 측은지심이 절로 촉발된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엔 '홈 메이드 치킨 수프 파티'열어 축하해 주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생후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문득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내 딸아이가 그 시기를 처음 만나고 달마다 반복하는 청소년기에 나는 축하 꽃다발이라도 건네고 따뜻한 격려의 손이라도 잡아 주었을까... 평생을 반복하면서도, 그때에도 무거운 일상을 변함없이 감당해 온 아내에게 어떤 형태로든 배려나 고마움을 표현했을까... 피 흘려 날 낳고 피땀 흘려 날 기르신 어머니께... 우리 주님의 십자가 피 흘림에 대한 나의 감수성과 이해와 감사의 정도는 어떠했을까... 세상 모든 일들은 누군가의 피 흘림의 기초 위에 세워지고, 그 뿌리에서 열매들은 빚어지는 것인데(생리와 출산의 피 흘림, 군인들과 독립운동가들과 노동자들과 순교자들의 피 흘림, 부엌과 일터에서 흘리는 피땀과 피눈물 등), 나는 피 흘리는 '그 누군가'를 향해 얼마큼이나 연민의 정과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 이 안쓰러움, 긍휼의 출처는 진주의 사랑스러움에서일까, 아니면 내 배 둘레처럼 늘어난 내 나이테 때문일까...